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정덕제|심한 자기과시욕]] ==== || [[파일:브레즈네프 훈장.jpg|width=270]] || 자뻑이 좀 심했던 브레즈네프는 '''[[셀프훈장|자기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일]]'''이 잦았다. 느닷없이 [[2차대전]] 때의 전공을 이유로 소련 최고의 영예인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자신에게 직접 수여하기도 했는데 그 횟수가 무려 '''네 번'''(1966, 1976, 1978, 1981)이었다. 장군 중의 장군으로 손꼽히는 [[게오르기 주코프]]와 동급이다. 거기에 그와 비슷한 등급인 [[사회주의노력영웅]] 훈장(1961)까지 더하면 무려 '''5중 영웅'''이 되는 셈. 이외에도 '''재임 기간 18년 동안 총 200여 개의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브레즈네프의 명예욕을 아는 측근들의 충성 경쟁이 무차별적인 훈장 수여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상훈에 대한 욕심은 전직 서기장들인 스탈린이나 흐루쇼프에 비해 브레즈네프 자신이 전쟁 때 별다른 전공이 없었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스탈린은 2차대전 때 당, 정, 군을 망라한 최고 지도자였고, 흐루쇼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드물게 개념인 축에 속한 정치위원으로 여러 전공을 세웠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스탈린그라드]] 전선군의 정치위원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흐루쇼프. 물론 브레즈네프도 일선 정치장교였고, [[블라우 작전]]때 격전지였던 캅카스 방면에서 실전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일개 전투에서조차 원수나 대장급이 줄줄이 야전군을 움직이던 독소전쟁에서 일개 소장급의 정치위원의 전공이 클 리가 없었다.[* 여기다가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서기장 시절 자기 군계급을 소장에서 원수로 4단계나 자가진급시켰다. ] 말년에 갈수록 이러한 훈장[[부심(은어)|부심]]은 심해지기만 했는데, 생전에도 사후에도 해외뿐 아니라 소련 국내에서까지 비웃음거리가 되어 [[사미즈다트]] 같은 지하 출판물에서도 [[디스]]했을 정도였다. 죽기 6개월 전에도 [[키예프 1500주년기념메달]]을 받고 갔을 정도이고, 1978년에는 2차대전 종전 직후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영웅'''들에게만 일괄적으로 수여되고 사실상 수훈이 종료되어 있던 [[전승훈장]]을 멋대로 부활시켜 수상하는 [[자뻑]] 모드를 보여주었다. 이 짓은 자신의 전공을 명실상부 독소전 최강 장군 [[게오르기 주코프]], 스탈린그라드를 천왕성 작전으로 구원한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막판에 베를린을 두고 주코프와 레이스까지 한 [[이반 코네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빨치산만 끌고 나치 독일을 애먹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 [[북아프리카 전역|북아프리카]]에서 [[에르빈 롬멜|사막의 여우]]의 각을 뜬 [[버나드 로 몽고메리]]와 동급으로 놓는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들이 이걸 안다면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그나마 눈치는 봤는지 게오르기 주코프, 이오시프 스탈린,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처럼 2회 수훈은 안했다. 브레즈네프의 셀프 전승훈장 수여는 소련에서도 대놓고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텔레비전에서 브레즈네프가 전승훈장을 받는 모습이 나갈때 모스크바 거리의 택시 기사들부터 당중앙위원회에 근무하는 운전기사들까지도 배를 잡고 웃어댔다. 체르나예프를 비롯한 일부 간부들은 이런 도를 넘은 자뻑이 여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였다. 하지만 당 최고위층은 브레즈네프 우상화 경쟁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참고로 브레즈네프가 전승훈장을 탐낸 이유는 그 영예도 영예이지만, 갖은 보석으로 장식된 전승훈장이 너무 멋져보여서(...) 였다. 브레즈네프는 공식적으로 전승훈장을 받기 5일 전에 일기장에다가 전승훈장을 보고 하악하악하는 내용을 남겼다. 또한 1979년에는 조악한 수준으로 쓰여진 자신의 회고록이 출판되자마자 '''레닌상 문학 부문을 수상하는 등 문학에 대한 능욕까지 해버렸으며''', 그와 레닌문학상을 두고 경합했다가 어이없게 낙마한 빅토르 골랴브킨은 "이 위대한 작가가 살아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가 우리처럼 거리 위를 행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 그는 당연히 레닌문학상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가 나를 앞선다고 본다. 이 장밋빛으로 뺨을 물들인 뚱땡이가 말이다. 여러분은 그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뒈질 것이다."라고 축사를 빙자한 조롱의 글을 레닌그라드의 문학 잡지 '오로라'에 기고했고 오로라 편집진은 몽땅 숙청당했다. 여기에 [[게오르기 주코프]]의 회고록에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자그마한 자신의 전공[*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을 넣으라고 했다. 당연히 주코프가 일개 정치장교였던 그의 전공을 집어넣을리가 없다.]을 창작해서 쓰라고 하는 위엄을 보여주기도.[* 문제의 회고록은 결국 10판째에서야 수정되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온갖 검열과 수정 압박이 가해져서, 초판이 발행되었을 때 주코프는 '''"이 책은 내가 쓴 게 아니야."'''라고 볼멘소리를 냈다고 한다.] 결국 이 양반이 죽은 후인 [[1988년]]에 소련 최고회의에서 관련 법규를 개정해서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든 사회주의노력영웅 훈장이든 1회 초과 수상 자체를 금지해 버렸다. 1년 뒤인 [[1989년]]에는 억지로 단 전승훈장이 박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즈네프는 스탈린식 우상화는 실시하지 않았다. 이런 자화자찬을 인민들이 비웃든 말든 자기만 만족하면 괜찮다는 스타일이었던 듯.[* 사실 브레즈네프도 살벌한 스탈린 시기를 겪어본 인물이고, 자신이 몰아낸 흐루쇼프 덕에 소련 정계의 살벌한 숙청이 완화된 것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우상화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 환경이긴 했다.] 그래서 흐루쇼프에 이어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s-5|브레즈네프에 대한 유머]]가 소련에서 유행할 수 있었다. KGB 요원들도 인민들이 서기장 동지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진 알고 있었겠지만, 본인들이 생각해도 브레즈네프의 훈장 수집 욕구는 너무 지나치다 못해 어이없을 수준이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